연혁

게시: 2010년 2월 22일 | 수정: 2010년 2월 22일

2009년

윈도우 비스타가 출시된 지 3년 만에 새로운 운영 체제인 윈도우 7이 한국을 포함, 전세계에 동시에 출시되었습니다. 사용자가 보다 빠르고 보다 편리하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개발된 윈도우 7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사용자들의 컴퓨팅 환경이 더욱 쾌적해 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2008년

회사 설립자인 빌 게이츠 회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난 2008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어느덧 성년의 나이인 20세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지만,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약관의 청년 기업으로서의 보다 큰 역할을 위해 차량용 IT 개발을 위한 현대기아차와의 전략적 제휴, 한국게임산업진흥원과의 글로벌게임허브센터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 시민사회단체의 IT 역량 강화를 위한 엔지오데이, 최신 소프트웨어를 학생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드림스파크 소프트웨어 무료 다운로드 프로그램, IT 창업을 증진시키는 비즈스파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2007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가장 큰 힘은 직원들이 열정입니다. 여기에 더해 기업, 시민단체(NGO),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강력한 파트너십은 IT 혁신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마이크로소프트 이매진컵 2007', 마이크로소프트 주최로 세계 IT 석학이 한자리에 모이는 '21세기 컴퓨팅 컨퍼런스' 등이 한국에서 열려, 우리나라의 IT 위상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윈도우 비스타 출시는 '소프트웨어+서비스' 전략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2006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에 본격 나선 원년입니다. 스티브 발머 사장은2006년 5월 방한하여 '한국 소프트웨어 생태계'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유망한 국내 IT 벤처를 지원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업체로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첫해 14개 업체를 선정해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유한 마케팅과 기술력을 공유하였고 세계 시장을 상대로 수출길을 열어 주기도 했습니다.

2005년

2005년은 마이크로소프트가 한국에 최초로 모바일 연구소를 설립한 해입니다. 2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정보통신부 장관이 참석하는 등 성대한 개소식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세계 최초의 모바일 연구소를 한국에 설립한 것이어서 더욱 뜻 깊은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몇 년이 지난 지금 세계 모바일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리더가 되도록 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2004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한국의 정보격차 해소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과 정보격차해소 상호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지금까지도 어르신 정보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003년

전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한국의 경쟁력을 널리 퍼트리는 것이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사명이자 자부심입니다.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탄생시킨 메신저 아바타 서비스는 전세계로 퍼져 나가, 한국의 앞선 인터넷 환경을 세계 시장에 널리 알린 사례로 기록됩니다. 빌 게이츠 회장이 해마다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CES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중소기업 제품을 직접 선보이며 IT의 미래를 설명한 것도, 한국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노력해온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염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2년

사회와 더불어 사는 것은 기업의 임무입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일찍부터 인터넷 환경의 부작용에 주목해왔습니다. MSN은 '인터넷 언어 바로 쓰기 운동'등을 펼치며 한글 지킴이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한글 사랑 동호회 '한사랑'은 각종 외국어로 점철된 IT 용어를 바로잡고 올바른 한글을 사용하기 위한 업계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01년

9.11 테러에도 불구하고 10월 중순 한국을 다시 찾은 빌 게이츠 회장은 'Digital Decade'를 주제로 연설하며 한국 IT산업 발전에 큰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IT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인력양성에 팔을 걷어 부치며 정보격차 해소에도 본격 나섰습니다. 미래 정보인력 양성을 위해 국내 기관들과 손을 잡고, 장애청소년 정보화를 후원했습니다. 이때 시장에 선보인 윈도우 XP는 PC사용을 더욱 쉽게 해주며 누구나 편하게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습니다.

2000년

새천년의 새 IT환경은 윈도우 2000으로 시작됐습니다. 소비자들의 뜨거운 지지 아래 새 시대를 상징하는 제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한국 IT의 미래를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우리기업과 잇달아 손을 잡았습니다. 현대자동차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삼성전자와 차세대 무선 솔루션 제휴를 맺었습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한국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각광 받을 수 있도록 협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1999년

한국 IT의 저력
모두가 새천년을 기다리는 감격에 휩싸여 있을 때, 우리는 한글 MSN 메신저 서비스로 한국의 메신저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의사소통 도구의 출현은 새천년을 한 해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을 만 했습니다. 한층 편리해진 오피스 제품군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습니다. 외환위기로 인한 매출감소에도 직원을 2년간 2배 가까이 늘리는 등 국내 투자를 오히려 강화한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IT 저력을 믿었습니다.

1998년

시련도 함께
나라 전체가 외환위기로 몸살을 앓던 시절이었습니다. 국민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어느덧 10살이 된 한국 마이크로소프트도 그냥 지켜만 볼 수 없었습니다. 상처받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대표적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기빙매치(Giving Match)도 이 때 본격적으로 가동됐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린 한국기업이기 때문입니다.

1997년

IT강국 도약의 초석 역할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한국 내 다양한 소비자들, 무엇보다 기업들이 IT를 통해 변화와 혁신을 거듭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사명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개별 기업들의 IT 혁신이 국가 전체적으로 가져올 시너지 효과는 무궁무진하다는 믿음은 한국마이크로소프트를 더욱 더 뛰게 했습니다. 당시 국내 최대 시스템통합(SI) 업체인 삼성SDS와의 전략적 제휴는 이러한 노력 중 한가지 사례입니다.

1996년

한국 인터넷 시대를 본격 열다
인터넷이 시대적 사명이었습니다. 한국에도 인터넷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IT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는 기대와 우려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엔 언제나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굳건히 서있었습니다. 국내 주요 PC 업체와 통신 서비스 업체에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인터넷 항해를 위한 훌륭한 나침반 역할을 해냈습니다.

1990~1995년

IT고속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다
90년 한글 윈도우 3.0, 한글 엑셀 2.1 출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PC 환경의 급속한 대중화를 가져온 출발점이었습니다. 92년 한글 워드가 나오자 소비자들은 문서작업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어 출시된 한글 윈도우 95는 한국 IT산업의 고속 성장을 이끄는 강력한 플랫폼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1980년대

한국에 뿌리내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한국 소비자들과 84년에 첫 만남을 시작합니다. 88년 큐닉스 컴퓨터와의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한국 시장에 공식 진출한 이후 MS-DOS를 중심으로 한국의 IT 역사를 함께 쓰게 됩니다. 전체 직원 수 27명의 작은 기업으로 시작했지만,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우리나라 PC 산업의 밑거름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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